만나고 싶은 소중한 친구 '정임'

Be not caer less in deeds, nor confused in words, nor rambling in thought.
- Marcus Aurelius (Roman Emperor, 121-180)
행동을 부주의 하게 하지말고, 말을 혼동되게 하지 말며, 생각을 두서없이 하지 말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황제, 121-180)

2006년 상영된 영화 '블러드 다이아 몬드'를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 몇일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이 영화는 서아프리카의 아주 조그만 나라인 시에라리온(Sierra Leone)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아프리카의 적도 기니만에 위치한 시에라리온은 가난했지만 평화로왔다. 그런데 이 조그만 나라 곳곳에서 많은 다이아 몬드와 주요 광물이 발견되면서 이권과 관련된 쿠테타와 반군(RUF)과 정부군 사이에 전쟁이 11년간 지속되어 난민 200만명, 사상자 20만명이 발생했다. 다이아몬드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다이아 몬드를 불법 거래하고 있으며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반군은 불법 무기로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신체의 일부를 베어버리거나, 심한 폭행을 하고, 어린 소년들을 납치해 마약을 이용해 총을 잡게 해서 잔인한 살인을 자행케 하며, 다이아 몬드를 채굴하는 데 무력을 행사하고 있다. 시에라리온 뿐 아니라 아프리카 곳곳에서는 다이아몬드로 인한 지속적인 유혈사태로 인해 370만명이 목숨을 잃고 6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꿈과 희망을 잃고 슬픔과 두려움에 얼룩진 삶을 살고 있다. 그 땅에서는 다이아몬드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었다. 수없이 많은 무고한 아프리카인들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인들의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여기는 다이아몬드로 인해 피를 흘리며 사라져가고 있다.

2006년 이후 아프리카의 척박한 마른 땅을 피로 붉게 물들이며 세계로 퍼져나가는 다이아몬드를 나는 결코 사지 않기로 결심 했다. 다이아몬드가 전혀 예뻐보이지 않고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하게 만든다. 신음하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고단한 작은 몸을 직접 따뜻하게 안아주고 위로 해줄 수는 없지만 내가 할수 있는 작은 몸짓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평생 처음으로 작은 강아지 한마리를 입양했다. 강아지에 대해 전혀 공부하지도 않고는 마음만 앞서서 무작정 집으로 데려왔다. 첫날 집으로 데려와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것이 난감했다. 강아지가 뭘 원하는지 뭘 먹여야 할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우왕좌왕 하면서 인터넷에서 여러가지를 검색하면서 하루 하루 노심초사하며 지냈고, 8개월이 흐른 지금 강아지 짖는 소리로 이 아이가 원하는게 뭔지 한 80% 정도는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 강아지를 집에 들인후, 주변의 애완 동물들이나 길 고양이도 모두 예뻐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인터넷 상에 살아있는 동물들 사진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서로 자세히 대화가 가능한 사람간의 관계와는 전혀 다른 언어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는 관계가 이 세상에 존재 함을 깨달았다. 사람들과 달리 강아지들은 주인의 외모나 능력, 건강상태에 개의치 않고 무조건 주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신뢰하며 변함없이 사랑을 베푼다.

사람들이 애완동물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애완 동물들이 사람들에게 더 큰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동물들도 지구에서 인간과 함께 보호받으며 공존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가족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려고 백화점에 갔다가 즐비한 밍크 목도리와 밍크 코트를 보게됬다. 어렸을 때는 예쁜 디자인이 있는지 윤기 흐르는 부드러운 털도 만져보고 구경을 했을 테지만, 이젠 살아있는 귀여운 밍크의 모습이 떠오르며 심기가 편치 않아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다. 집에 돌아와서 옷장에 걸려있는 오래 된 밍크, 여우털, 거위털등으로 만들어진 옷 몇벌이 갑자기 눈에 심히 거슬린다. 내가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중학교때 나는 약간 잘난척 하기도하는 마음이 어린 사람이었다. 그런데 항상 조용하고 착해보이는 정임이와 한반이 되었고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같이 교회도 다니고, 등하교시 같이 걸어다니며 친해졌다. 정임이는 항상 웃는 얼굴로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신기한 친구였다. 정임이와 한 반이 된 후 첫학기 시험을 치르고 성적표를 받았는데 정임이가 갑자기 성적표를 바꿔보자고 했다. 무심코 바꿔서 봤는데, 정임이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정임이는 내 반 석차가 1등이어서 놀랐다. 이렇게 공부 잘하는 친구는 한번도 없었다고 하며 큰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정임이의 성적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진짜로 반 석차에 꼴찌인 성적표는 처음 봤다. 정임이는 작은 부엌문이 나란히 이어진 건물 2층에 제일 끝에 살았다. 작은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문이 바로 앞에 보였다. 방은 하나였고, 그 작은 방에서 부모님과 오빠 두명과 정임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나는 착한 정임이가 언제나 좋았다. 정임이는 야간 여상에 진학후 졸업해서 작은 회사 경리로 취직했다가 나이많은 노총각 상사와 어린나이에 바로 동거를 하게 되었는데, 몸을 못 가누시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씻기고 식사를 준비하면서 아이도 낳았는데 남편의 매일 지속되는 극심한 폭력을 견디다 못해 몇년만에 맨 몸으로 처량하게 도망쳐 나왔다. 친정에서도 돌봐줄 여력이 안되었고, 혼자 어렵게 백화점 시식코너 등에서 시급으로 일을 하며 연명했다. 당시 정임이는 간혹 회사로 나를 만나러왔었다. 그녀는 항상 밝게 환하게 웃으며 내가 부럽다고 말했는데 나는 정임이의 그 말들을 깊이 생각지 않고 그냥 농담처럼 웃어 넘겼다. 같이 식사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지내다 헤어졌다.
나는 당시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지 못했고, 나중에서야 알게 되어 마음이 정말 아팠다. 그녀는 백화점에서 같이 근무하던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해서, 초등학교앞에 작은 김밥가게를 열었고 두부부가 성실히 일해서 몇 년만에 좀 큰 규모의 식당을 운영하다가, 식당이 있던 빌딩도 사고, 아파트와 부동산등도 장만하게됬다. 나는 정말 기뻤고, 정임이가 착해서 복이 당연히 찾아 왔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가끔 방문하면 정임이는 아무리 바빠도 나를 만나러 서울 어느 곳이나 만나러 와줬다. 내가 정말 바쁠때는 출국때 인천 공항에 찾아와 나와 차라도 한잔 마셨다. 매번 만날때 마다 나는 정임이의 훌륭한 점들을 많이 배우게 된다. 얼마 전에 만났을때에도 예전 어렵던 시절과 변함없이 편한 캐쥬얼 옷에 재래 시장 장보는 주머니 같이 생긴 지퍼가 달린 헝겊 핸드백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명품 핸드백이 전혀 필요치 않고 들고 다니기에 무겁고 불편하다고 한다. 본인은 필요 없지만 시어머니는 명품을 너무 좋아하셔서 매년 신상품으로 샤넬이나 더 비싼 것들을 하나씩 사드린다. 남편이 좀 편히 다니라면서 큰 승용차를 사줬는데도, 한달 몰고 다니다 너무 불편하다며 오래도록 타던 작은 소형차만 타고 다니고, 남편에게 새차를 주는 사람이 바로 정임이다. 어릴때 즐겨보던 순정만화의 주인공 캔디 같은 친구가 바로 정임이다. 언제나 본인보다는 주변사람들을 배려한다. 사람을 볼때는 눈으로 보면 안된다는것을 그녀를 통해 깨달았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외모나 경력, 능력, 언변, 학력, 재력등등은 그 사람을 포장하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오늘 문득 친구 정임이가 많이 그립고 보고싶다.

독일계 미국인으로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사회 철학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릭 셀리그만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년 3월 23일 ~ 1980년 3월 18일)의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 서문에 보면 사람의 역사는 보다 많은 자기 몫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소유의 역사이며, 이러한 '소유 지향적 삶 (Having Mode)'은 필연적으로 갈등, 권모술수, 경쟁, 전쟁, 비인간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무한 투쟁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은 '존재 지향적 삶(Being Mode)'으로 전환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유 지향적 삶의 자기 정체성은 자신을 무엇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 나 (I am what I have)로서 파악되며, 존재 지향적 삶의 자기 정체성은 자신을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I am what I am)로 파악되는데, 소유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면 마음이 메말라지게 되고 소유 자체에만 얽매이게 되어 자신의 본질을 잃게 된다. 그러나 사람답게 사는 존재 지향적인 삶을 살다 보면 마음의 평화와 더불어 부와 권력과 명예 또한 자연히 따르게 된다고 믿는다.

새해에는 에릭 프롬의 주장대로 하루 하루 존재함 자체에 감사하며 생활하려고 한다.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인생에 중요한 본질을 머리속으로 잘 정리해 좋은 생각을 하며, 좋은 생각들을 따뜻한 언어로 표현하며, 따뜻한 언어로 표현한 바른 행동을 실천하며 한해를 보내고 싶다. 내게 되돌려 줄것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 진심으로 훈훈한 마음을 나누며 올 한해를 보람있게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