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시간과 어른

안중근 의사는 단 나이 37살에 나라를 생각하고 목숨을 걸고서 일본대사를 죽이려 했다 한다. 그때의 나는 단지 나 하나 먼 나라에서 뿌리내려 사는 것이 힘들어, 가끔은 밤에 잠을 자다 아침이 되면 일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이였었다.

어렸을 적에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성당의 큰 미사 수건을 머리에 얹고 결혼식장 신부의 베일처럼 올렸다 내렸다 하며 놀았다. 사춘기 때에는 엄마 옷장에서 몰래 멋진 옷을 꺼내입고 숨어서 영화도 보고 그러다 선생님께 들켜 아주 많이 혼이 났든 적도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공부보다는 세상 밖에서 사는 법을 배우며 깊은 생각 없이 당연한듯 살았다.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모든 것이 신나고 재미있고 좋은 일만 가득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스스로가 해야 하는 결정이 두려워지고 원하는 것을 가지고 싶다면 무언가는 포기하고 비워야 한다는 것을 배워가며 나이를 늘려갔다. 결혼 후 혼자서 몇 년을 지낸 시간이 있었다. 둘이었다 다시 하나가 되어보니 더없이 외로웠고, 결혼 전처럼 친구들과 명동의 밤거리를 헤매고 다닌 적도 많았다. 남편의 부탁으로 제일 친한 친구는 주말이면 남편 대신 저녁도 사주며 조금만 지나면 다 좋아질 거고, 괜찮다고 위로하며 챙겨 주었다. 그렇게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오랜 세월을 지켜봐 주었는데 갑자기 세상 밖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울었다. 철없고 세상일을 잘 못할 줄 알았는데 잘하고 있고 기특하다는 칭찬을 얼마 전에도 해주던, 나의 편 한 사람이 또 줄어든 것이다. 점점 곁에는 마음으로 살펴주고 바라봐주는 이들이 줄어든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누군가를 보살피고 돌보며 용기 주고 칭찬하며 - 같은 편으로 해주어야 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밖 먼 곳으로 떠난 삶의 나의 편들을 붙잡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참 많이 빈자리가 넓고 그립다.

37살의 안중근 의사의 나이가 떠오르면 부끄럽고 미안하다. 여전히 나 하나 제대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아 그런저런 이유로 지금 이 자리에 이만큼으로 와 있다. 언제부터인지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이 싫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도 싫어 조금이라도 미루면서, 세상살이 잘 모르는 거처럼 어리광도 부리고 실없는 짓도 하며 억지 부려본다 .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