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뭣이 중헌디!

시대마다 유행어가 있다. 주로 영화나 TV드라마의 대사에서 나오던 말들이 일반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 비슷한 상황에서 자주 쓰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유행어가 되곤 한다. 사회학에서는 '세태어'라고 표현하며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분석한다.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너나 잘하세요' 등 비록 그 대사가 나오는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이 말들은 많이 듣거나 한 번쯤은 다른 사람에게 사용했을 것이다.

2016년 '곡성'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뭣이 중헌디'라는 말은, 험한 일을 당한 딸이 속도 모르고 이것저것 묻는 아버지(곽도원)를 답답해하며 푸념하듯이 내뱉은 전라도 사투리 대사다. 후에 트로트가수 임영웅이 동일한 제목의 노래를 발표해 인기를 얻기도 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결정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역설적 세태를 반영하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그럼 과연 무엇이 중요한가? 나한테는 중요한 일이 남들한테도 중요한 일 일까? 다들 중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중요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 이런 의문들이 들 것이다. 특히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사회에서 일률적인 가치판단을 한다는 것은 넌센스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니 너도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이 시대에서는 안 어울리는 논리임이 틀림없다.

한 사람이 어떤 부분에 돈을 많이 쓰느냐가 그 사람의 관심과 가치척도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가령 자전거 타이어를 교체하는데만 수백달러를 쓰는 사람도 있고, 명품백을 사는데 수 천달러를 투자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컴퓨터게임이나 화장품 구입에 월수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이기도 하다. 반면 어렵게 모은 돈을 불우한 이웃이나 선교지에 아낌없이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이 중요한가는 그 사람의 몫이고 그들만의 자유인 것이다.

아스팔트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나라를 걱정하는 어르신도, 한편에선 무능한 독재정권에 맞서겠다고 구호를 외치는 젊은이도,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그들만의 생각과 가치판단이 있을 것이다. 너는 틀렸어가 아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뭣이 중헌디'는 나 한테만 쓰는 말이지 상대방에게 함부로 써서는 안되는 말이 되고 있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