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언어의 온도

책을 읽으며 걸어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것이고 또 지혜가 생길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책을 선택할 때이면 되도록이면 예술적이며 어려운 것을 읽으려 하고 제대로 의미를 느끼려 한다.

요즘 읽었던 이기주라는 작가의 책 제목이 "언어의 온도"이다. 내용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책 속의 작가는 나이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굳이 어른 흉내를 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넘치는 지식의 홍수 속에서도 자신을 똑똑한 사람으로 자랑하지 않는다. 그만큼 그는 다른 어떤 것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덧붙이지 않아도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다치고 아파하면서 살아보니 진짜는 과거의 경력과 학벌과 나이가 아닌, 바로 실력이라는 것을 벌써 알아차린 것 같다. 또 그는 불타는 남녀 간의 사랑과 본능적인 엄마의 사랑을 구별하지 않는다. 사랑은 그냥 사랑인 것이다.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허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라는 문장에는 더 이상 평가하고 따질 이유가 없다.

작고 사소하고 평범한 것에 의미를 두는 걸 좋아하고 그런 것을 표현하면서 살아야 한다. 가끔 누군가의 신뢰와 기대와 칭찬의 말에 가슴 설레며 기뻐했던 날들이 있고 또 누군가의 말이라는 화살을 맞고 오랫동안 그 상처를 위해 노력했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고 한다.

이젠 뒤돌아보며 정리해야 하는 한해의 마지막 거리쯤에 와있다. 그렇다고 서두르거나 앞서면서 재촉하지 않아도 괜찮다. 서로에게 가슴으로 번지는 따뜻한 온도의 말로 채워줘야만 그 기억과 믿음으로 그나마 선선히 걸어갈 것이다. 언어에는 뜨겁고 차갑다는 온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품위도 있고 인격도 있다. 여전한 실수와 미안함으로 미처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 중간의 자리에 머무르고 있지만, 아직도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고 그렇게 간간이 책을 읽으며 살 것이다. 현명한 그리고 지나온 삶의 진한 자국들을 남긴 고전을 읽으며 다시금 오늘을 다듬으면서 살겠지만, 가끔은 어깨에 올려져 있는 가식도 포장도 내려놓고, 평범한 그러나 나의 이야기 같은 책을 읽으며 사는날도 참 좋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