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미국역사의 한페이지 마운틴 러시모어 (Mt.Rushmore)

북미대륙의 한가운데 사우스타코타주와 와이오밍 주에 걸쳐있는 블랙힐스라는 산악구이 대평원속에 우뚝 솓아있다. 그 봉우리중의 하나인 마운틴 러시모아에는 자연의 품위와 인간의 집념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미국역사의 한페이지가 상징적으로 새겨져 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고 위대한 민주 국가의 탄생을 위하여 헌신한 조지워싱톤. 미국의 독립 선언문을 기안했고 루이지애나 지역을 구입, 국토를 넓힌 토마스 제퍼슨.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승리로 미 연방을 살렸고 모든 인간의 자유를 지킨 에이브라함 링컨. 그리고 서부의 자연보호에 공헌이 컸고 파나마운하 구축 등 미국의 위치를 세계적으로 올려놓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네 위인의 초상이 산정의 거대한 바위에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로 그 위품을 과시하고있다.

실물 크기와 별차이가 없는 규모의 조각을 할때도 표정이나 얼굴을 닮게 한다는 것이 쉽지않은 일인데 이 러시모아산의 그것을 볼때 얼굴하나의 크기만 해도 60피트나 되는 조각을 그것도 네 개를 절벽꼭대기에서 만들었다는것은 인간능력의 한계를 넘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건너편 언덕위에 만들어진 전망대에 서서 위대한 조각물을 바라다 보는 입장이지만 누가 어떠한 방법으로 이 토록 대담한 작업을 성취했는지 그 역사적인 과장을 살펴보기로한다.

1923년 사우스 다코타의 역사학자 로빈슨이란 사람이 블랙힐스의 니들스 연봉 바위에 서부 개척의 공로가 많은 몇 인물들의 초상을 조각할것을 착안하고 그것을 실천하기위해 유지들의 설득에 나섰다. 그의 끈질긴 설득으로 사우스 다코타 출신의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의 합의를 얻어 그 조각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되는 구천 보글럼 이라는 조각가를 초빙하기에 이르렀다. 보글럼은 1871에 아이다호주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와 프랑스의 파리에서 조각을 공부했고 그 당시 조지아주 stone mountain에서 리 장군의 초상을 조각하기 위해 준비중이었는데 여러가지 문제로 일이 중단된 상태에서 이 초청을 받게된 것이다. 1924년 보글럼은 열두살된 아들 링컨을 데리고 블테힐스의 니들즈에 들러 세밀한 현지 답사를 한 결과 거대한 초상을 조각하기에 적당치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이 역사적인 일에 감동한 키스톤 마을사람들이 대거 참여해서 도로구축 공사에 나섰으며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나 어린이들까지 참가해서 원시적인 도로를 산밑에 까지 만드는데 일단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권야기와 케이블을 바위꼭대기에 올려가기 위해 원목으로 계단을 만들어 가면서 암벽의 굴곡을 이용해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고 무거운 권양기를 밑에서 받치고 위에서 끌어 올리면서 힘겹게 올려다 놓는데 성공했다.

네 개의 얼굴 윤곽이 완성 단계에 들어가면서 팔과 손 그리고 입은 옷등의 작업에 들어갈 무렵인 1941년 봄 어느날 갑자기 보글럼이 심장 마비로 쓰러졌다. 돌발적인 보글럼의 사망으로 작업전체가 중단되다시피 했으나 시초부터 아버지 옆에서 조수 역할을 해온 아들이 자금 사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감독직을 맡게 되고 수개월 동안의 고생끝에 현제의 상태로 이 거대한 조각사업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이 준 총괄이사
푸른투어 서부본부
보성중고/고려대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