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바다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 않는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otryed but not defeated.")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It is silly not to hope. It is a sin.)
"어쩌면 내가 잡고 싶은 큰 물고기가 그놈들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지. 내 큰 물고기는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거야."
글 클로이 장 기자

"공수래 공수거"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느낀 감정을 이처럼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인데, 어느 누구도 이 말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더 큰 성공을 위해 끝없이 달려간다. 천년만년 살 거라고 온갖 헛된 것들을 잡으려 애쓰는 우리 인생, 어쩌면 성공하기 위해서 라기 보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이 우리 인생인지 모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1899년에 태어나 언론인과 작가로 활동하였고 스페인 내전에 파시스트이자 후에 군사 독재자가 된 프랑코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참여하였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행동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썼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은 그러한 경험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당시 그의 소설은 헐리우드 영화의 소재를 제공하여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1950년 그의 나이 쉰한 살 때, 10년간의 공백을 깨고 '강을 건너 숲속으로'라는 작품을 출간했으나 혹평을 받았고, 그 다음 해에 어머니와 두 번째 부인 폴린이 죽었다. 이런 어두운 상황에서 1952년, 미국 주간지 라이프에 발표한 '노인과 바다'가 소위 대박을 터뜨려 이틀 만에 무려 500만 부가 팔렸고, 이 작품으로 다음 해에 퓰리처상(1953년)을 받고 그 다음 해인 1954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이렇게 세계적인 문호가 되었지만 그의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 였다. 1961년 62세 때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고혈압, 편집증에 시달리다가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오랫동안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어부가 평생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 거대한 청새치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사투 끝에 잡은 청새치를 상어에게 전부 뜯어 먹히고 결국 앙상한 뼈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출발할 때와 다름 없이 여전히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다.

노인은 멕시코 부근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를 한다. 84일 동안 노인은 빈손이었다. 결국 친한 벗이자 동료였던 소년도 떠나버렸다. 소년의 부모가 노인이 최악의 불운을 만날 것이라며 소년으로 하여금 다른 배를 타게 한 것이다. 85일째 되던 날, 노인은 여느 때보다 일찍 바다로 나간다.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매일 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을 테니까."

노인의 독백에서 84일 동안의 불운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읽을 수 있다. 저녁이 다가올 무렵, 노인은 드디어 길이가 무려 5.5미터나 되는 거대한 청새치를 만난다. 이처럼 큰 청새치를 난생 처음 본 노인은 작은 배를 끌고 도망가려는 청새치와 밀고 당기며 사투를 벌였다. 밤낮으로 싸우던 노인은 기진맥진해졌지만, 나약해질 때마다 끊임없는 독백으로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보게, 늙은이, 자네나 두려워 말고 자신감을 갖게."
"고통쯤이야 사내에겐 별거 아니지."
"난 견딜 수 있어. 아니, 반드시 견뎌내야 해."
마침내 사흘째 되던 날, 노인은 작살로 대어의 심장을 찔러 배에 붙잡아 맸다. 평생에 걸쳐 가장 도전적인 작업에서 노인은 승리했다.

『노인과 바다』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마도 노인이 청새치를 잡은 다음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헤밍웨이는 노인이 대어를 낚은 성공담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았다. 대어를 잡아 항구로 향하던 노인은 상어 떼를 만나 상어에게 고기를 다 떼어 먹히고 결국 앙상한 뼈만 남은 청새치를 가지고 돌아온다. 이러한 장면은 아마 헤밍웨이 자신의 처지가 반영됐을 지도 모르겠다. 당시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년이 넘게 이렇다 할 작품 없이 작가로서 긴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그는 짧은 승리 이후 긴 패배가 이어지는 것이 인생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노인은 손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상어에게 맞섰다. 단지 물고기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부로서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것은 평생을 보낸 바다 한가운데서, 업으로 삼은 고기잡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저항이었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성숙한 태도였다.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더구나 그건 죄악이거든.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하고 그는 생각했다.

다시 모든 것을 잃었으나 노인은 청새치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았다. 상어에 대해 분노도 품지 않았고, 자신의 불운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일상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깊은 잠에 빠진 노인은 아프리카 사자의 꿈을 꾼다. 죽음 직전까지 갔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니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 금의환향한 어부처럼.

나이가 들어가면 젊은 시절의 꿈을 포기하기 쉽지만 노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노인은 '어디엔가 틀림없이 있을' 인생의 목표인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 하늘의 새를 보며 위치를 예측하고 묵묵히 다시 도전한다.

"놈이 선택한 것은 그 어떤 덫과 함정과 속임수도 미치지 못하는 먼 바다의 깜깜하고 깊은 물속에 머무르자는 것이었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은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까지 가서 놈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까지 가서 말이야. 이제 우린 서로 연결된 거야. 어제 정오부터."

노인이 잡은 5.5m의 700kg가량 되는 청새치는 상어의 공격을 받아 커다란 머리와 허옇게 드러난 등뼈 사이에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그것이 노인이 그토록 힘들게 잡은 성과였다. 그러나 노인은 불굴의 의지를 비치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노인은 아직도 꿈꾸고 있다. 노인의 꿈은 젊음과 순수, 평화의 상징인 아프리카의 밀림을 헤매고 있었다. 이 소설의 제일 마지막 문장은 정말 감동적이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The old man was dreaming about the l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