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야기 - 왜 먼 타국에서

주위에서 미국으로 온 이유를 가끔 묻고는 한다.

아이들의 교육 때문인지? 직장 때문인지?
그러면 우리 부부는 이구동성으로 그런 것이 아니고 그저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한국을 떠났다고 답한다.
직장생활에 불만이 있거나 힘들지도 않았고 가족들과는 화목하고 별문제나 큰 변화가 없어서였을까?
IMF를 겪으며 주위에서 외국으로 직장을 찾아 떠나거나 설명회를 다녀오는 사람들의 기사를 보며 막연히 우리도 한번 외국으로 나가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생각하면 기회도 생기는 법인지 우여곡절 끝에 미국, 이 동네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언제나 몇 달 몇 년 후의 계획을 꼼꼼히 세우지 않던 버릇대로 길어야 5~6년 지내고 돌아가자 하는 마음으로 왔었을 텐데 사는 곳은 달라도 사람 사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마음에 이렇게 길게 지내고 있나 보다.

무계획이 계획이라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아이들은 자라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독립을 할 나이가 되고, 우리는 새로운 둘만의 시작을 하고 있다.

그동안 돌아보지 않던 부모.형제의 끈이 너무 멀리 있는 것도 새삼 느껴지고, 일가친척과 친구들과의 연결고리도 어디에서 찾아 끼워 맞춰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래전 부모님과 고모, 삼촌이 5촌 당숙, 숙모분들과 매달 모임을 갖던 것이 이제야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매달 동창분들과 거나하게 한 잔 하고 오시던 아버지도 이해가 되고.

얼마 전 읽은 한 달 동안 집안에서 지내는 것을 하면 돈을 준다는 기사에 나는 한 달이 아니라 1년도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장담을 했것만, 아닌가 보다.

난 혼자서도 언제나 신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저녁이 되면 남편과 아이들이 주위에서 시끌벅적하게 온기를 품어 주었기에 가능했었던 듯 하다.

언제나 부모 형제를 이해하는 것은 꼭 그 시간을, 그 일을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좀 더 일찍 이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책상 옆의 거울을 보다 얼마 전 다녀간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제나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함박웃음으로 오롯이 나를 바라보던 얼굴, 학교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거나 힘든 일, 어려운 일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늦둥이 막내 역할을 톡톡히 하던 내 동생. 머나먼 이곳에서 아이들 키우며 외롭게 지낸 시간보다 동생과 함께 못한 20년의 세월이 갑자기 후회와 함께 아쉬움으로 몰려온다.
자주 만나지 못했던 부모님의 방문에 사진과 화상통화로 보았던 모습보다 깊어진 주름에서도 느려진 행동과 나이 듦을 느꼈을때도.
언제 또 만나지? 하시는 엄마의 물음에 2년 후에 또 놀러 오세요. 라 답하는 마음이 개운치만은 않았기에..

글 이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