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 : 현대 (1980~2000)

영화배우 출신 레이건 대통령 President Reagan

닉슨의 사임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포드 대통령과 민주당 카터 대통령 시대 역시 외교적 수모를 당하면서 미국의 권위는 추락해 갔다. 세계 도처에서 미국인들이나 미국기관들에 대한 테러가 잇따랐고 이란에서는 미국의 지지를 받던 독재자 샤(shah)가 축출되었으며 테헤란에서는 미국대사관에 있는 직원들이 인질로 잡혀 카터의 대통령임기 내내 발목을 붙잡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80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이 국민들의 카터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영화배우로서의 개인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좋았던 옛시절'을 상기시키면서 '우리도 다시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띄워주고 러시아를 밀어 부치며 경제를 안정시켜 대외적인 미국의 위상을 회복하는 등 재임 8년 동안 표면적으로 는 인기 좋은 대통령이었고 국민들을 만족하게 하였지만 경제나 외교 정책 등에 많은 허점을 들어내고 실패한 것들이 적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최근의 경제적 위기 상황이 레거노믹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지미 카터 대통령을 제치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스캔들, 그리고 지미 카터가 미국은 "병"에 걸렸다고 말한 그 후의 일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의 아침"이 다시 올 것이라고 그의 재선 선거운동에서 외치곤 했다. 자유에 대한 새로운 외침과 더불어, 흔들리지 않는 자본주의와 시장체제, 그리고 전 세계에 다시금 떨칠 미국의 힘 등 전부 다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가 또다시 강조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상들은 미국을 한때 배신했던 60년대의 가치관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영화배우 출신 레이건 대통령 President Reagan

공화당 대통령 로날드 레이건과 함께 8년간 부통령을 지낸 조지 H. W. 부시가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매사추세츠 주지사 마이클 듀카키스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초기에 부시는 1982년 마지막 달부터 시작된 강력한 랠리 경제를 계승했다. 그러나 연방준비 제도가 1980년대 경제 성장을 제한하는 통제적인 통화 정책을 계속했다. 1990년 중반에 오일 쇼크가 다시 오자, 1990년부터 시작된 소비 지출은 수축되었으며, 경제가 불황에 진입하였다.

1990년 8월 2일부터 1991년 2월 28일까지 벌어진 이라크와 다국적군(Coalition Force) 사이의 전쟁. 조지 부시 대통령의 미국이 주축이 된 다국적군이 쿠웨이트를 침략한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스텔스 공격기, MLRS, 패트리어트 미사일, 크루즈 미사일, AH-64 아파치 등 미군의 하이테크 무기 종합사격장 들이 대중에게 처음 선보여 그 위력을 가감없이 보여준 전쟁이며, 전 과정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면서 여러 면에서 전세계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은 전쟁이기도 하다.

걸프전의 명분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응징하여 국제질서를 바로잡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현 상태를 유지해서 안정적인 석유공급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당시 이라크군은 중동의 군사강국으로 이란-이라크 전쟁을 사실상 승리로 이끌면서 100만이 넘는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수도 바그다드의 방공 능력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들 뺨치는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여 사막의 폭풍 작전이 시작되자 미국의 F-117은 이라크의 심장을 찔렀으며, 곧바로 토마호크 미사일의 대공세, B-52의 폭격, 그 외 다양한 공군기의 공격이 이라크의 중심부를 강타하였다. 39일간의 강력한 미 공군 & 다국적군 공군의 공습으로 이라크는 생화학 무기 생산처로 의심받는 공장들, 군의 지휘부, 통신시설, 대공망, 발전소가 무력화 되었다. 특히 이 전쟁에서 60만에 달하는 이라크군의 장비와 지휘 체계를 초토화하고 사상자를 7만 명이나 내는 동안 미군은 단 294명만 전사한다. 그나마 그중 145명은 사고사이고 실제 전투 희생은 149명이며, 이중 35명이 아군 오인사격 희생자였다.

걸프전은 최첨단 병기와 공군의 힘을 보여준 전쟁이었으며 승전군 사상자 수가 놀라울 정도로 적은 전쟁이었다.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언론의 역사에 있어서도 한 획을 그었다. 매스미디어에 의해 전쟁 전 과정이 전세계의 안방에 보도된 전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