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 : 현대 (1970년대)

베트남 전쟁(Vietnam War)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년 12월 19일 - 1954년 8월 1일) 이후 분단되었던 베트남에서 1955년 11월 1일[53]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은 분단된 남북 베트남 사이의 내전임과 동시에 냉전시대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대리 전쟁 양상을 띠었고, 1964년 8월부터 1973년 3월까지는 미국 등 외국 군대가 개입하고 캄보디아·라오스로 전선이 확대되어 국제전으로 치러졌다.

베트남 전쟁은 베트콩으로 알려진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약칭 '베트콩')의 게릴라전과 북베트남 정규군인 베트남인민군의 정규전이 동시에 전개되었다. 1964년 8월에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개입함으로써 국제전으로 확대되었고, 1965년에 미국, 대한민국 등이 지상군을 파병하였다. 이후 8년간의 전쟁 끝에 1973년 1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평화 협정이 체결되어 그 해 3월 말까지 미군이 전부 철수하였고, 1975년 4월 30일에 사이공 함락으로 북베트남이 무력 통일을 이뤄 1976년에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이 전쟁은 제공권을 장악한 압도적 군사력의 미군이 폭격과 공습, 포격, 수색 섬멸 작전 과정에서 네이팜탄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투하하고 고엽제 등 화학 무기를 사용하여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희생시킴으로써, 미국 내에서 반전 운동을 촉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제적 군사개입에 대한 정당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닉슨 정부는 1972년부터 팔레비가 원하는 대로 미국의 최첨단 무기를 판매했다. 또한 이란의 비밀경찰(SAVAK)을 도와 팔레비의 철권통치를 유지시켰다. 이란에 대한 최첨단 무기 판매는 미국의 해외 무기 판매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전에는 최첨단 무기를 우방국에도 판매하지 않았었다. 이는 베트남 전쟁 패배 이후 각 지역의 안보는 그 지역 국가들이 맡는다는 '닉슨 독트린'에 따른 것이었다. 즉 이란을 중동의 군사 강국으로 키워 지역 경찰로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1973년 1차 석유위기 이후 악화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만회하기 위한 목표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팔레비는 이란의 모든 석유 수출 대금 및 미제 무기 수입대금을 오로지 록펠러 가문 소유의 체이스맨해튼은행을 통해서 했다. 1979년 이전 체이스맨해튼의 한 해 예금 중 절반이(150억 달러) 이란의 석유 대금이었다고 한다. 팔레비 국왕과 록펠러 가문 사이에 끈끈한 유착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 유착관계가 1979년 11월 미 테헤란 대사관 인질 사건 및 이란 이슬람 혁명의 단초가 된다.

1979년 1월 이후 해외를 전전하던 팔레비 국왕에 대한 미국 망명 허용이 미 대사관 점거의 빌미가 된 것이다. 1978년 11월에 시작된 반정부 시위로 팔레비 국왕은 1979년 1월 해외 망명길에 오른다. 이후 이란의 반정부 세력 내에서는 세속파 대 이슬람파 간의 암투가 벌어진다. 당시 아볼 하산 바니사드르가 이끌던 세속파 혁명 정권은 친미 노선을 유지했다. 반면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세력은 반미 노선이었다. 이 과정에서 1979년 10월 팔레비의 미국 망명이 허용되자 이를 미국의 반혁명 음모로 파악한 이슬람 세력이 미 대사관을 점거하면서 444일간의 인질극을 벌였고 이를 통해 이슬람 세력은 세속파 정권을 몰아내고 혁명의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이다. 1953년의 모사데크 축출 공작이 미 대사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런 의심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팔레비의 미국 망명 허용이 당시 카터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록펠러 가문 및 이들의 심복인 키신저와 브레진스키가 밀어붙인 결과였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오랜 친구인 팔레비를 위해 대통령의 반대를 무릅쓰고 팔레비의 미국 망명을 허용한 것이다. 만일 팔레비의 미국 망명이 없었다면 미 대사관 점거도 없었을 것이고, 이란에는 미국에 적대적이지 않은 세속적 민주 정권이 들어섰을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2년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각종 일련의 사건들을 지칭하는, 미국의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권력 남용으로 말미암은 정치 스캔들이었다. 사건의 이름은 당시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 본부(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Headquaters)가 있었던 워싱턴 D. 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유래한다. 처음 닉슨과 백악관 측은 '침입사건과 정권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1974년 8월, "스모킹 건"이라 불리는 테이프가 공개됨에 따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측근들도 그를 떠나게 되었다.

닉슨은 미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지 4일 뒤인 1974년 8월 9일, 대통령직을 사퇴하였다. 이로써 그는 미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