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야기 - 방관인지 믿음인지?

아직도 분간할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을 키우는 방법이다. 내 나름의 신조와 규칙이 없이 "그때그때 달라요"로 아이들이 모두 제 나름의 개성대로 크고 내 손에서 벗어 났지만 참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했던 유일한 나의 신조라면 신조인 ' 네가 행복하고 즐거운 것을 해라.' 였다.
하지만 내심 아이들이 내가 생각하는 정도의 성적과 학업성과가 나와서였으리라 짐작을 해본다.

처음 미국에 와서 영어가 힘든 첫째를 위해 학원에 보냈던 것이 공부를 위해 아이에게 투자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후에는 첫째가 초등학교 때 그림 그려보고 싶다고 해서 미술학원 보내고, 아는 지인이 미술학원을 오픈해서 둘째 킨더 때 첫째와 함께 보냈다.
이때부터 첫째는 미술 쪽 진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초등학교때의 희망은 커서는 바뀔 줄 알았것만 아니었나보다. 그 이후에는 내심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서도 커뮤니티센터의 아트클라스를 열심히 찾아다녔고, 둘째의 에너지 발산을 위해서 축구, 야구와 테니스 등 모두 쫓아다녔지만 그중에 제일 긴 5년간 아이스 스케이팅을 한 것이 대견하다 할 정도로 스포츠에는 영 재능이 없었다.

첫째가 미술 쪽 학교를 가겠다고 했을 때 나의 생각에는 이 아이 정도면 내가 생각한 대학에 가서 원하는 미술까지 두가지를 모두 할 수 있을듯한 욕심에, 우리가 지원은 못 해주지만 하고 싶으면 해보라고 했었다.
덜컥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서 모두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는 미안한 마음에 우리가 지원해 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원하는 아트 쪽으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첫째에 이어 둘째도 드라마 팀에서 공연 및 스텝으로 일을 하고, 잘 하지는 못하지만 친구 따라 콰이어 클라스를 선택하더니 자기의 길을 찾았다.

많은 부모의 바램처럼 욕심이 내게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심 노래도 부르고, 악기도 연주하고, 드라마 공연도 하면서 공부까지 잘하면 대학도 이름 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대학은 학비 싸고 가까운 곳이 맞는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한 것이 못내 미안했지만 역시 본인이 원하는 음악 쪽으로 학교를 정해놓고 신나게 놀며 즐기며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대학을 갔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아도 정답은 찾을 수 없을 듯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모습에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지만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항상 조금만 더 공부에 신경 좀 쓰지.
어찌 두 아이 모두 시험 한번 보고는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고 노력을 더 해보지도 않았을까? 하지만 아이들 모두 좋아하는 공부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행복했다.
또한, 아이들이 아직까지는 자신들이 선택한 진로에서 출발점에 있어서인지 불만을 토로하거나 왜 더 채근하지 않았느냐는 말은 없다.

나의 아이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 위험하지 않도록 뒤에서 옆에서 챙겨주었다고 생각하는 지난 시간과 아직은 행복해하며 지내고 있는것을 보면 내심 방관이 아닌 믿음으로 지켜봐 주고 있었다고 내 자신을 위로하며..

이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