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 : 제1차 세계 대전 (1900-1920)

제1차 세계 대전 (1900-1920)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외국 간의 전쟁에 참여하면 국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먼로 독트린 이래 고립 정책을 고수하던 미국은, 미국 선박들이 독일의 U보트에 의해 계속 파괴되자 이에 분개하기 시작한다.

또한, 1917년 1월 16일, 독일 외무 장관 아서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 제국 대사 펠릭스 폰 에카르트에게 보냈던 암호 전보에서 "멕시코가 미국을 공격할 경우, 멕시코가 1848년에 미국에 빼앗긴 모든 영토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라는 내용 때문에 미국은 참전 쪽으로 기울어졌다.치머만 전보에 의해 멕시코 전쟁으로 얻었던 땅을 뺏길 위험에 처하자, 그동안 평화를 주장하며 전쟁 참가를 꺼려왔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1917년 4월 6일,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 포고를 하였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승전국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미국은 헌법을 개정해 징병제를 부활하였으나, 미국 최초의 헌법과 같이 독신 남성만 징집시켰다.

1910년부터 1930년 사이에 200만명이나 되는 남부의 흑인들이 인종 차별을 피하여 뉴욕, 시카고,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등의 북부 도시들로 이주하였다.

세계 경제 대공황(1929-1939)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전쟁 물자를 팔아 수익을 올렸던 많은 공장들은 전쟁이 끝나면서 문을 닫았고, 이에 따라 많은 실업자가 생겨났다. 실업자들이 크게 늘자 구매력이 떨어져, 이에 따라 다른 공장들도 문을 닫기에 이른다. 또한, 연방준비은행은 통화량을 크게 늘려 1921 년 6월 317억 달러였던 통화량이 1929년 6월에는 457억 달러가 되어 44%나 늘어났다. 통화 가치가 떨어지고 돈이 넘쳐나자 돈 벌기가 쉬워졌고, 많은 사람들이 수익을 노리고 주식에 투자했다. 뉴욕의 큰은행들이 산하 모든 브로커 기관들에게 '24시간 이내 지불조항'을 적용하여 융자해준 모든 콜 대출을 24시간 내에 전부 거둬들이라고 지시하자, 주식 브로커나 주식을 산 모든 사람들이 빚을 갚기 위해 소유한 주식을 급히 팔아야 했고, 그 결과 주식시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에 일어난 악명 높은 1929년의 대공황(The Great Crash 1929)이며, 그 여파로 전 세계가 공황에 휩싸이게 되었다. 대공황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거래 은행으로 달려가, 있는 대로 돈을 찾아 증권 회사에 대출금을 갚으려 했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대공황 시절에 제 32대 대통령에 취임한 루즈벨트 (Franklin D. Roosbelt) 은 취임 즉시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뉴딜정책(New Deal Policy)을 행하였다. 뉴딜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부흥뿐 아니라 사회개혁도 포함하는 정책이었는데 좀처럼 경제가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나 1935년 여름부터 경기가 상승되어 루즈벨트는 1936년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1937년 경기는 다시 악화되기 시작하여 후기 뉴딜로써 대처하였는데,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1941년의 제 2차 세계 대전 참전에 의한 군수 증대 덕분에 미국의 경제는 회복되고 실업자도 격감했다. 뉴딜 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고, 과연 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경제 침체를 완벽히 극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선 많은 의견이 엇갈린다.

제2차 세계 대전 (1939-1945)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과도한 전쟁 배상금을 떠맡아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던 독일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고 1939년 9월 1일 선전포고도 없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이미 내부적으로 경제 대공황이라는 문제점을 떠안고 있던 미국인들은 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있었으나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연합국에 참가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끝낸 미국은 크게 부상하게 되는데, 그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유럽 각국에서 돈과 장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호기를 잘 이용한 덕분이다.